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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 연애천재 여친님과 성실정력열애 중 / 렛세이 4기 화요일의 낑깡 / #Pride #LoveWins #LoveIsLove #Feminist 김철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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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줘요

나란한 걸음 / 2017. 8. 20. 23:54

너와 내가 결혼을 꿈꾼다. '우리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서 함께 하는 일상을 꿈꾼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삶.


하지만 어쩐지 '결혼'이라는 현실은 닿지 않을 듯 멀게 느껴졌고, 우리는 2년을 훌쩍 넘겨 800일을 앞둔 연인이 되었다. 사실은 비밀인데, 나도 800일은 처음이야.


최근 우리 사이에 자꾸만 다툼이 불거졌다. 너는 몇 번이나 울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너의 불안과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마도 모자라고, 부족한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에 휩싸여 본질을 보지 못한 탓이다.


"언제가 되면 할 수 있는데?"

"그 언젠가까지 나는 기다리기만 해야 해?"

"정말로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긴 해?"


날선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어떡해. 당장 돈이 없는데.'

'이사 하고 살림 합치는 거, 그거 다 돈인데.'


그동안 내가 가볍게 내었던 많은 말들이 네게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가슴이 미어졌다. 네게 천하의 형편없는 사람이 된 기분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내가 언제까지고 기다릴 것 같아?"

"결혼을 못하면 나랑 헤어지겠다는 거야?"


나는 막연하지만 분명하게 언젠가 너와 함께 할 미래를 확신했으나, 너는 나의 '막연함'에 지쳐 '불안'해 하고 있었다. 좀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스스로를 질책했다. 나는 이미 진심을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충분히 네게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도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전해지지 않은 진심은 하등의 쓸모가 없다.


'지금 이대로도 좋잖아.'


비겁한 속마음과 마주한 기분은 끔찍했다. 네 말대로, 나는 너를 당연한 사람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내가 준비될 때를 기다려 줄 사람.


"무슨 준비가 필요한데?"


허를 찌르는 말에도 어수선한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정말, 나에게는 무슨 준비가 필요한 걸까.


결혼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네가 모아둔 것으로 해결하겠다고, 어차피 내게 바라는 건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짜증스러운 얼굴을 마주한 순간은 내게도 상처가 되었다. 처음 보는 표정과 말투. 정말 그게 전부인가. 우리의 결혼은, 돈만 있으면 되는 일인가. '돈이 없잖아' 어느새 습관처럼 나오던 그 말들이 내게 그대로 돌아왔을 뿐인데, 왜 나는 그게 그렇게 아프고 비참할까.


어디에서부터 말을 정리해 전해야 할지 몰랐고, 우리가 정말 결혼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의뭉스럽고, 방어적이기까지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네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당장 우리의 결혼이 현실이 되려면 해결해야 할 고민들이 무더기로 생겨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겁냈던 것도 같다. 이 모든 건 네 말대로 내 문제, 나만의 문제와 고민들이고,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랄 사항이 아니라 양해를 바라고 설득시켜야 할 부분이라는 말에 뒷통수를 맞은 듯 했다. 완전히 수긍했고, 많이 미안했다. 나는 내 미래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너에게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너와 결혼할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라는 내 생각에 대한 이유를 찾는 밤이다. 개인적으로 계획하는 금전적인 목표도 달성해보고 싶고, 내가 정말 '내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갖고 싶다.


오늘은 동생과 저녁 내내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생이 아버지 집으로 다시 들어가고, 이 집에서 우리가 함께 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너와 이야기했던 시간들을 곱씹으며, 가장 빠르게 실현 가능한 방법부터 검토했다. 이렇게 피붙이와의 문제도 해결하고, 이외에도 어떤 방법이 우리에게 가장 좋을지 계속 고민할 예정이다. 어떻게든 네가 기다림에 지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지.


앞으로는 이런 고민들을 하나하나 너와 공유해 나가려 한다. 신기루 같은 미래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쥘 듯 가까운 그림을 그려나가고 싶다.


너와 결혼하고 싶다. 진심으로 그 삶을 원한다. 멀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멀지 않을 미래.


언젠가 네가 천원샵에서 쇼핑하며 나와의 결혼을 상상했다는 그날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훌륭한 짝이 되고 싶다.


더이상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현실이 될 때,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될 사람은 너 뿐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기를. 


매일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시간에 기대어 쉴 수 있는 품을 줄게. 별이 지고 해가 뜨는 아침에도 다정한 사랑을 속삭일게. 


나랑 결혼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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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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